작성일 : 10-05-11 15:06
[주간조선 2009.12.21] [대학] 경희대 평화학술회의
 글쓴이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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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메신저' 28년, 재도약 선언
‘국내 최대 평화토론회’ 규모 비해 위상 축소, 재정비 목소리
학내외 석학 50여명 워크숍 열고 전담기구설치 등 모색 나서

지난 12월 3일 서울 회기동 경희대학교 본관. 신고전주의 양식의 육중한 화강석 건물 사이로 일군의 교수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었다. 국내 최대의 평화토론회로 불리는 ‘경희평화학술회의’를 평가하는 워크숍이 열린 것이다. ‘경희평화학술회의’는 경희대 미래문명원 주관으로 ‘전쟁과 군축’ ‘빈곤과 남북문제’ 등 평화와 관련된 제반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리다. 1982년 처음 개최된 이래 28년간 한 차례도 빠짐없이 이어온 학술대회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특히 올해 개최된 평화학술회의는 경희대 개교 60주년과 맞물려 더욱 성황리에 치러졌다고 한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시작해 경희대 본관 2층 대회의실에서 ‘경희, 새로운 평화를 말하다’를 주제로 5시간 넘게 계속된 평가 워크숍에도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정치외교학과 교수들이 주축이 된 50여명의 학내외 석학들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이 자리에는 경희대 조인원(趙仁源·55) 총장도 직접 모습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조인원 총장은 식전 격려사를 통해 “경희대는 비록 대학이지만 사회적 책임과 공헌이라는 목표 의식을 가지고 어떻게 국제사회에 기여하겠는가라는 취지에서 28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평화학술회의를 개최해 왔다”며 “그런 경희대의 노력을 총체적으로 되짚어보면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좀 더 나은 사회와 역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엔 ‘세계 평화의 날’ 지정에도 기여

경희대가 ‘평화’를 유달리 강조하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경희대 한 관계자도 “경희대가 과거부터 유독 ‘평화’ ‘문명’ ‘르네상스’ 같은 말을 강조하는 까닭을 한번 주목해 봐달라”고 말했다. 이는 경희대의 설립자인 조영식(趙永植·88) 현 경희학원 이사장(전 경희대 총장) 때부터 국제평화와 협력 같은 주제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영식 이사장은 지난 2000년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최초 노벨평화상 후보감으로 왕왕 거론된 인물이기도 하다. △유엔평화훈장(1984년)을 비롯 △앨버트 아인슈타인 평화상(1990년) △제1회 세계평화대상(1996년) △제1회 만해평화상(1997년) △간디평화상(1998년) 등 조영식 이사장이 받은 평화와 관련된 상과 훈장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조 이사장의 차남인 조인원 현 경희대 총장도 경희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국제협력, 유엔과 같은 세계 평화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 경희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 경희대는 지난 1981년 유엔이 ‘세계 평화의 날’을 지정하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유엔은 ‘매년 9월 셋째 주 화요일’을 세계 평화의 날로 지정해 국제적인 평화행사 등을 개최하고 있다. ‘세계 평화의 날’ 지정은 1981년 당시 세계대학총장회 의장을 맡고 있던 조영식 경희학원 이사장이 코스타리카(중남미)의 수도 산호세에서 ‘세계 평화의 날’을 지정하자고 제안한 것이 최초 발단이 됐다. 이날 워크숍을 개최하기 전 약 5분에 걸쳐 상영한 학술회의 홍보 동영상에서도 경희대는 유엔과의 우호적 관계를 한껏 부각시켰다. 특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나오는 영상이 등장할 때는 빈곤타파, 기아퇴치 등 평화 운동에 헌신한 고(故) 마이클 잭슨의 ‘힐 더 월드’가 배경음악으로 깔렸다. ‘힐 더 월드’는 고 마이클 잭슨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만든 곡으로 국제평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다.

경희대가 ‘평화’라는 거대담론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시대적 요구 때문이기도 했다”는 것이 경희대 관계자들의 말이다. 미소 냉전의 골이 한창 깊어지던 1980년대는 핵확산 반대운동 등 평화에 대한 전세계적인 요구가 팽배해질 때였다. 우리나라도 역시 전두환, 노태우를 위시한 신군부가 12·12사태를 일으켜 무력으로 정권을 잡으면서 대학가와 재야, 종교단체 등을 중심으로 평화에 대한 열망이 끓어 오르고 있었다. 경희대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28년간 이어져온 경희평화학술회의가 1980년대 당시 평화운동과 민주화에 대한 미약하나마 공개적인 열망 표출의 장이 됐다”고 회상했다. 경희대의 한 관계자는 “유엔의 ‘세계 평화의 날’ 지정 이후 경희대는 연례적으로 국제 평화학술회의를 개최하고 관련 평화활동을 벌이면서 평화정신 확산에 힘써 왔다”고 자부했다.

유엔, 사립대학 행사에 이례적 참여

하지만 ‘살벌했던’ 1980년대에 경희대는 ‘경희평화학술회의’로 인해 말 못할 고초도 많이 겪었다고 한다. 경희대가 주도하는 평화운동이 12·12 군사쿠데타(1979년 12월 12일)로 정권을 잡은 신(新)군부 쿠데타세력의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당시 5공 정권에서는 “경희대 평화운동. 그거 빨갱이들(좌익) 짓 아니야”라는 시각으로 경희평화학술회의를 바라봤다고 한다. 국립대학도 아닌 일개 사립대학이 주최하는 행사에 국제기구인 유엔이 공식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도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유엔 가입조차 돼있지 않던 상태였다. 경희대 한 관계자는 이날 학술회의 주제발표 자리에서 “1980년대 당시 경희대 교내외 안팎의 정치적 환경 또한 평화학술회의의 모호한 성격을 가지게 하는 데 일조를 했다”면서 “정치적으로 오해를 받을 소지가 많은 행사였기에 대규모로 진행하거나 외부 홍보를 한껏 도모하기도 어려웠다”고 당시의 고충을 토로했다.

‘평화’라는 주제 때문에 집권세력과 충돌을 벌인 것은 민주화 정권이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실제 경희대는 1990년대 초 경희대 본관 뒷산에 ‘평화의 전당’을 건립할 때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구 안전기획부(현 국정원)와 충돌을 빚었다고 한다.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지어진 ‘평화의 전당’은 평화 관련 세미나를 비롯해 각종 행사를 여는 곳으로 경희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고딕식 건물이다. 하지만 당시 안기부에서는 “이문동 구 중정 청사가 내려다보인다”는 이유를 들어 완강한 반대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구 중앙정보부(현 국정원)는 남산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 서울 이문동 경희대 뒷산 바로 너머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문동 중정 건물은 중정이 남산으로 옮긴 뒤에도 안기부 교육관 등으로 사용돼오다 지난해 7월에야 비로소 철거됐다. 경희대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안기부 인사들은 ‘평화’라는 말에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석학들 논문 발표의 장으로

때문에 1982년 경희평화학술회의의 첫 시작도 지금에 비하면 극히 미약할 수 밖에 없었다. 1982년부터 1983년까지는 경희대의 자체적인 학술대회에 불과했다. 하지만 경희평화워크숍은 1982년 1회 회의 개최 이후 매년 회의를 거듭하면서 그 규모와 위상을 나날이 키워갔다. 특히 1984년에는 유엔에서 공식적으로 학술회의에 참여함으로써 유엔이 직접 관여하는 학술회의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한 1991년보다 약 7년 전의 일이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유엔 미가입국으로 남아있어 유엔이 직접 관여하는 평화학술대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이례적으로 비쳐졌다고 한다. 물론 유엔과의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는 조영식 경희학원 이사장(당시 경희대 총장)의 역할이 주효했다.

주미대사와 외교부 차관을 역임한 고(故) 박건우 경희사이버대 총장도 살아 생전 사석에서 “우리나라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한 데는 경희대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그후 경희평화학술회의는 규모뿐만 아니라 질적 성장을 거듭해 1992년에는 국내 정치학자들에게 ‘평화를 주제로 한 가장 큰 규모의 학술회의’로 본격 자리매김했다. 일례로 지난 5월 열린 ‘세계시민포럼(WCF)’에는 전세계 57개국에서 3150명에 달하는 학자들이 몰려와 350편의 논문을 쏟아냈다. 또 같은 기간 열린 ‘세계시민청년포럼(WCYF)’에서도 880명의 학생들이 260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특히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경희대는 국제 평화운동의 헤게모니를 쥐고 이끌어가는 주류그룹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평화학을 주도하는 ‘경희학파’의 탄생을 점치기도 한다. 서양 학계에는 ‘비엔나 서클(철학)’ ‘프랑크푸르트 학파(사회학)’ 등 유사한 신념과 학풍을 공유하는 학자집단이 잘 조직돼 있는 편이다. 반면 국내에는 ‘서강학파(경제경영)’를 제외하면 이렇다할 학파가 없는 편이다. 경희대 한 관계자는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평화학을 주도하는 경희학파의 출현도 단순히 희망으로만 머무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희평화학술회의 어떻게 변하나

2011년 30주년 앞두고 전면 리모델링
전담기구·인력 두고 대대적 홍보계획

경희대 이날 열린 워크숍에서는 ‘경희평화학술회의’에 대한 반성도 쏟아졌다. 특히 참석자들을 중심으로 “28년 역사를 가진 경희평화학술회의가 그 위상에 비해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왔다. ‘평화’라는 주제 자체가 워낙 ‘고담준론(高談峻論)’에 ‘하품 나오는 얘기’라는 인식이 팽배하다보니 학문 발전이나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실제 성과보다 덜 알려지고 있다는 것이 요지다. 경희대 한 관계자도 “과거 평화의 날 행사 및 학술회의가 주요 매체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한 경우도 많고, 참여자들의 후일담이 선순환 고리를 형성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하는 계기로 작동하였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경희사이버대 임정근 부총장도 “그동안 매년 평화학술회의를 해오면서 특별한 쟁점이 없었던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날 평화학술대회에 참석한 경희대 박모(유럽어문학부 1년) 학생은 “평화학술회의를 통해 학생들이 공감할 수 있었던 성과는 조금 미흡했던 것 아닌가”하는 지적을 해 주최측을 긴장케 했다. 실제 경희대 평화학술회의를 찾은 외국인 학자들은 지난 2005년까지만 해도 매년 증가를 거듭하다 최근 그 증가폭이 상당히 꺾인 상태다.

때문에 경희대 측에선 오는 2011년 경희평화학술회의 30주년을 앞두고 ‘평화학술회의’자체를 전면 리모델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경희대 사회학과 송재룡 교수도 “오는 2011년은 평화학술회의가 30주년이 되는 해”라며 “그동안의 평화활동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게 될 것인가를 모색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30주년을 기해 ‘경희평화학술회의’ 자체를 학내외에 대대적으로 알릴 계획이다. 경희대 측은 평화학술회의만 전담하는 조직을 신설하는 방안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경희평화학술회의는 2005년 설립된 경희대 미래문명원에서 주관하고 있다. 미래문명원은 경희대 산하의 △평화복지대학원 △NGO대학원 등 관련 기구들을 지원하는 조직이다. 경희대 귄기붕 평화복지대학원장은 “매년 개최되는 학술행사인 만큼 상당한 수준의 사전 준비와 지속적인 관리가 수반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평화학술회의를 전담하는 기구와 전담 인력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회성 행사로서 학술회의를 갖는 것이 아니라 학술회의를 통해 평화 메시지를 전파하고, 평화 사상과 이론을 발전시키며, 평화를 논의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동훈 기자 flatron2@chosun.com